toice'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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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사셨던 자은도의 바다, 고모집에서 조금만 나오면 이런 바다가 나온다. 실제로 우리집은 올해 여름 이 곳으로 휴가를 오려고 했었는데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2012년 4월 24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답답해할만큼 대쪽같은 분이셨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게 싫으셨다.

나는 10살때부터 27살때까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집안 사정으로 작은 집이었던 우리집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게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랑 트러블이 많았다. 낚시 다니신다고 매일 무언가 만드시는 작업들이 시끄러워서 집에 있는게 편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할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모시려고 했지만 나는 그걸 고쳐보려고 했기 때문에 할아버지께 대든적도 많다. 물론 뜻대로 안됐으니까 할아버지를 미워한적도 많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는 걸음이 무척 빨랐던 것으로 기억할만큼 나이에 비해 무척 건강하셨다. 여든이 넘으셔도 무거운 낚시가방 들고 한강에 가셔서 낚시하실 만큼 건강하셨다. 80대 후반이 되서야 몸이 조금씩 약해지시고 앉아 계시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잠드시는 등 몸이 약해지시는게 눈에 보였다. 내가 의지하던 할아버지가 나한테 의지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재작년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간호를 해야해서 우리집, 고모집에서 번갈아 밤 새며 간호했는데 나도 퇴근하고 밤을 샌적이 있다. 고모랑 교대하고 집에 가는데 할아버지가 고맙다고 하셨다. 20년 가까이 같이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고맙다는 말씀이셨는데 나는 그게 정말 슬펐다. 평소에 안하시던 말씀이셨으니 정말 이제 끝까지 왔다고 생각이 들어서 집에 가는내내 울었던 것 같다.

퇴원하시고 항상 곁에 누군가 있어야 되서 큰집에서 모셔가고 사정상 다시 고모집으로 가시게 됐다. 대전-서울-목포에 있는 섬. 목포에 있는 섬에 내려가신지 한달도 안된 것 같은데 돌아가셨다. 괜시리 마지막엔 고생하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주민등록상으로는 16년생이시지만 실제로는 92세로 보통 호상이라고 할만큼 오래 사셨다. 다들 마음의 준비를 10년전부터 한 것 같다. 예상보다 훨씬 오래 사셨다. 그래서 그런지 장례 분위기가 엄청 슬프다기보다 오랜만에 친척들 모두를 한번에 만나는 그정도 분위기였다.

다이어트 한다고 금주하고 있었는데 풀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술은 안마시겠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그 어떤일 범주를 넘어섰으니까. 어릴 때 부모님 맞벌이 하시고 끼니마다 밥 챙겨주신 것은 할아버지였다. 초등학교때 비오면 우산 들고 기다려주신 것도 할아버지였다. 방학때면 같이 대전 내려가서 형제가 없던 내게 친척 동생들을 친동생같이 느끼게 해준 것도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어디 갔다오시면 하다못해 기차에서 파는 호두과자라도 꼭 내 선물 하나씩 사오셨다. 잠자리 더 잘 잡으라고 낚시대 개조해서 잠자리채 만들어주시고,  미니 농구대 잘 걸라고 장치를 만들어주신 적도 있다. 생각해보니까 어릴때는 할아버지랑 함께 한 추억들이 너무 많았다. 함께 살면서 내가 머리가 크고 할아버지께 정말 무심했다.

장례 치르면서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불과 돌아가시기 직전 주말에 고사리 캐시고 손질하시는 사진을 고모가 보내줬었다. 좋은 곳에 내려가셔서 다시 건강하게 지내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와서 전화라도 한통 드릴껄 후회해봐야 늦었다. 이제와서 후회해봐야 무엇하나 싶지만 한동안 이 죄송한 마음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종교도 없고 사후세계도 믿지 않지만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이제는 평안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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